A씨는 산재 승인에 따라 산재보험 의료기관인 ‘C의원’에서 해당 기간 동안 적절한 산재요양급여를 받으며 치료에 임했습니다. 이는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였습니다.

그런데 A씨는 이 기간 중인 2020년 2월 28일부터 5월 16일 사이에 주소지 인근의 ‘D한의원’에서도 동일한 무릎 부위의 통증 완화 치료를 총 31회 받았습니다. D한의원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이하 ‘건강보험’)이 적용되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총 728,970원의 요양급여비용 중 80%를 D한의원에 지급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공단은 “산재요양기간 중 산재 승인 상병에 대해서는 산재요양급여를 받아야 하며,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건강보험 적용이 제외된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즉, A씨가 건강보험 급여를 받은 것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공단은 2022년 6월 15일, A씨에게 D한의원에서 지출된 공단 부담금 728,970원을 부당이득으로 징수한다는 처분(이하 ‘이 사건 징수처분’)을 내렸습니다.

A씨는 공단의 이러한 처분에 불복하여 이의신청과 심판청구를 거쳐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원고(A씨)의 손을 들어주며 공단의 징수처분을 취소하는 파격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그동안의 보수적인 해석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국민건강보험이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따라서 요양급여비용 부담 문제에 관하여 보험재정 절감만을 이유로 공단에 유리하고 수급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급여 제한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국민의 건강권이 보험 재정 논리보다 우선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법원은 두 제도의 차이를 상세히 비교하며, 단순히 ‘동일 상병에 대한 이중 수혜’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 수급자 범위 및 재원: 건강보험은 전 국민 대상, 일반 국민의 보험료 기반(수급자 본인 부담금 일부 있음)인 반면, 산재보험은 근로자 및 특정 노무제공자 대상, 사업주 보험료 기반(수급자 본인 부담금 없음)입니다.
• 급여 범위 및 지급 절차: 건강보험은 사전 심사·승인 없이 의료기관과 수급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으며, 통증 완화, 고정된 증상 악화 방지 치료도 급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산재보험은 근로복지공단의 엄격한 심사·승인 필수이며, ‘치유’의 개념이 완치되거나 증상이 고정된 상태를 의미하여 단순 통증 완화나 고정된 증상 악화 방지 치료는 요양 종결 사유에 해당하여 산재요양급여 대상이 아님이 중요합니다. 또한, 산재보험 의료기관 지정 절차, 요양 기간 연장, 의료기관 변경, 상병 추가 등 모든 과정에 공단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볼 때, 환자가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받을 수 없는 (예: 통증 완화) 치료를 받기 위해 일반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거나, 단순히 접근성이 좋은 일반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것을 ‘부당한 방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4호는 수급자의 이중 급여 방지를 넘어, 수급자에게 보다 유리한 산재보험 등을 우선 적용하고 건강보험은 보충적으로 적용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수급자가 본인에게 더 유리한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않고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본인부담금을 납부하면서까지 치료를 받는 것은 ‘미련한 짓’일 수는 있으나, 법률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한 위법한 행위 또는 부정수급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권리의 성격을 구분했습니다. 건강보험요양급여청구권은 법령 규정에 의해 직접 구체적인 권리가 발생하는 ‘추상적 권리’ 단계인 반면, 산재요양급여청구권은 관할 행정청(근로복지공단)의 심사·인용 결정에 따라 비로소 구체적인 권리가 발생하는 ‘구체적 권리’ 단계입니다. 따라서 근로자는 우선 일반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진료를 받다가 나중에 산재 승인을 받으면,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에게 본인부담금을 요양비로 지급하고 공단에는 공단부담금을 지급하는 정산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공단은 수급자에게 구체적인 산재요양급여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만 건강보험 적용을 거부할 수 있으며, 단지 산재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추상적 권리)만을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을 거부하는 것은 건강보험 제도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업무상 질병의 경우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 증명이 어려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불승인하고 공단은 산재 가능성을 이유로 건강보험을 거부하는 ‘급여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경우 공단이 우선 의료기관에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한 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에 따른 구상권(제3자 구상)을 행사하여 공단부담금을 환수해야 한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수급자가 산재요양급여 지급결정을 받지 못한 것은 수급자의 책임일 뿐 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태도는 사회보장기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며, 비용 정산은 공단과 근로복지공단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마치 자동차 사고 시 피해자가 가해자 보험회사로부터 실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경우, 자신의 보험회사가 ‘잘 주장했더라면 가해자 보험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었으니 우리는 지급할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허용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며 개인에게 책임 전가 금지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법원은 피고(공단)가 인용하는 과거 하급심 판결이나 법제처 법령해석은 ‘국민건강보험의 기능과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그리고 ‘최신 대법원 판례가 나오기 전에’ 이루어진 것들이므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일갈했습니다. 이는 본 판결이 기존의 보수적 해석을 넘어선 진일보한 판단임을 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