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장 하나 때문에 쇠고랑? 업무방해죄의 숨겨진 함정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안 주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결론부터 시원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업 관계를 정리하거나 특정 단체의 임원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회사 통장이나 법인 인감을 넘겨주지 않고 버티는 경우, 괘씸한 마음에 당장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고 싶으시겠지만 단순히 물건을 돌려주지 않는 소극적인 행위만으로는 형사처벌까지 이끌어내기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 최근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인 것은 십분 이해합니다만, 왜 법원은 이런 판단을 내리는 걸까요? 여기에는 ‘업무방해’라는 범죄를 바라보는 법원의 냉정한 시각이 숨어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숨겨진 함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Q&A로 풀어보는 인수인계 분쟁: 김사장과 박사장의 이야기
법률 용어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0년간 동고동락하며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던 김사장과 박사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업 방향에 대한 잦은 다툼 끝에 결국 박사장이 회사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터졌습니다. 회사 명의 통장과 법인 인감, 거래에 필요한 주요 서류들을 관리하던 박사장이 “정산이 끝날 때까지는 못 준다”며 인수인계를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한 겁니다. 당장 다음 주에 시작해야 할 공사가 있는데, 계약서에 도장도 못 찍고 자재 대금도 치를 수 없게 된 김사장은 분통이 터집니다.
Q1. 박사장의 행동, 명백한 업무방해 아닌가요? 바로 고소하면 되죠?
A. 잠시만요! 형사 고소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김사장의 입장에선 박사장의 행동 하나하나가 회사의 명운을 건 ‘방해’ 행위로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형법이 말하는 ‘업무방해’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 법원은 업무방해죄의 ‘위력’을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하게 할 만한 세력’으로 정의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제압’**이라는 단어입니다. 박사장이 사무실 문을 용접해 막아버리거나, 트럭으로 입구를 가로막는 것처럼 적극적이고 물리적인 힘으로 김사장의 의지를 꺾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줘야 할 것을 주지 않는’ 소극적인 저항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근 대법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소극적 저항과 적극적 방해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Q2. 그럼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요!
A. 아닙니다. ‘대체 수단’을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유무죄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대법원이 박사장과 같은 사람에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는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인 김사장에게 **’다른 해결 방법’**이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김사장은 당장 은행에 방문하여 대표자 변경 및 사고 신고를 통해 기존 통장의 거래를 정지시키고 새로운 법인 통장을 개설할 수 있습니다. 법인 인감 역시 등기소에 인감 분실 신고 및 개인(改印) 신고를 하면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며, 박사장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업무를 재개할 방법이 있느냐 없느냐’**이며, 방법이 있다면 법원은 박사장의 행위가 김사장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업무에 ‘차질’이 생긴 것과 업무가 ‘마비’된 것은 법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새로운 관점: ‘형사’와 ‘민사’는 다른 트랙입니다
그렇다면 박사장의 얌체 같은 행동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걸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형사’와 ‘민사’라는 두 개의 트랙을 구분해야 합니다.
- 형사 책임: 업무방해죄 불성립, 즉 ‘전과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 민사 책임: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박사장의 인수인계 거부로 인해 김사장이 새로운 통장과 인감을 만드는 데 비용이 들었다면? 계약이 지연되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김사장은 그 모든 손해에 대해 박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박사장은 자신이 초래한 손해를 돈으로 물어줘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인수인계 분쟁 고소 전, ‘3가지 체크리스트’
따라서 비슷한 분쟁에 휘말렸다면, 감정적으로 경찰서부터 찾아가기 전에 아래 세 가지를 냉정하게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우회로가 있는가? : 상대방의 비협조를 피해 업무를 정상화할 다른 법적, 행정적 절차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변호사와의 상담은 바로 이 ‘우회로’를 찾는 과정입니다.
- 실질적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가? : 상대방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금전적 손해, 계약 파기, 신용도 하락 등 구체적인 피해 내역을 꼼꼼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이는 향후 민사소송의 핵심 증거가 됩니다.
- 이 싸움의 목표는 무엇인가? : 상대방을 전과자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까, 아니면 회사를 하루빨리 정상화하고 손해를 복구하는 것이 목표입니까? 목표에 따라 전략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눈앞의 ‘적’을 응징하는 데만 몰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노련한 변호사는 처벌이 아닌 ‘해결’에 집중합니다. 당신의 시간과 돈, 그리고 감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 그것이 바로 법률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